관찰일기01 : 로사
플링크팀 인터뷰 관찰일기 01 : 로사 (비즈니스 매니저)

관찰대상 : 로사
관찰자 : 캡틴
로사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년 전쯤 대학교 내 한 카페였다. 당시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는 3학년 이상의 학생이 3~4명의 신입생을 맡아서 대학 생활 적응과 전공에 대해서 미리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경영학 전공에 관심있는 신입생 네 명과 매칭이 되었고, 로사는 그 신입생 중 하나였다. 로사는 동기들에 비해서 의젓했고,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를 사랑했다.
당시에는 경영 전공 학생들에게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성공적인 사회 데뷔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래서 하루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뛰어난 인재들을 어떻게 선발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해서 함께 보았는데, 그 때 로사의 눈은 반짝였고 이미 실리콘 밸리로 건너갈 것 같은 에너지를 풍겼다. 하지만 로사는 전공 탐색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학과 행사에 잘 참석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졸업 준비와 취직 준비가 바빠 로사를 포함하여 매칭되었던 신입생들과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2015년 나는 플링크를 창업했고, 초기에 플링크팀은 중고등 입시 화상과외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반 년 정도 운영을 하다보니 주변에서 우리가 만들었던 실시간 강의실을 여기저기에서 본인들의 비즈니스에 접목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단순 실시간 강의실을 공급한다고 해서 서비스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정보 공급자(선생님, 컨설턴트)도 모아야 하고 정보 수요자(학생 등)도 모아야 하는 등 운영 실력이 필요한데 번번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 참고할 수 있는 이야기 묶음 : 플링크 창업 이야기 )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하게 몇 년 전에 만났던 로사가 연락이 안 되던 사이에 창업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로사가 창업한 업체는 청소년들의 꿈을 키워주고 상담해주는 일을 담당했고, 청소년 캠프도 운영하고 대학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등 여러 대형 기업이나 교육 기관들과 협력하여 일을 잘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로사는 학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진실되고 개성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도 출간을 했는데, 이러한 활동들이 당시 운영하고 있던 화상과외 서비스와 접목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로사에게 연락을 했다.
로사의 창업팀에는 엔지니어가 없었고, 당시 플링크는 컨텐츠가 없었기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 해 보기에 좋은 파트너십이 될 것이라고 함께 생각하였고, 약 6개월간의 준비를 거쳐서 실시간으로 자기소개서를 함께 고민해주고 첨삭해주는 서비스를 오픈하게 되었다.

두 회사는 이 서비스 런칭 후 운영까지 약 1년간 같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협업을 진행했고, 서비스는 전국의 여러 학생들이 개성있는 자기소개서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대학 입시가 마무리 되면서 서비스도 종료 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지속적으로 협업을 이어갈 줄 알았던 내 기대와는 다르게 로사는 이제는 자기의 꿈도 좀 되돌아 봐야겠다며 갑자기 스페인 순례의 길을 걸으러 떠나버렸다.

한편 로사가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동안 플링크 팀은 프라이머라는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확정짓게 되었고, 로사가 돌아오면 함께 팀을 이루어 도전하자고 제안을 하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로사가 스페인으로부터 돌아온 기념으로 함께 식사하기로 한 애슐리. 반가움도 잠시,
"캡틴, 저 다음 주부터 한 스타트업 팀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어떻게 그 팀과 알게 되었는지, 왜 그 팀과 함께 하고 싶었는지 차분히 이야기하던 로사는 여전히 의젓했고 스페인 순례자 길의 힘이 합쳐져 드디어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투자를 유치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형편이 아주 넉넉하지는 않아 괜찮은 보상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로사의 새로운 선택을 축하해야만 했다.
그 뒤로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만나서 제품의 피봇, 채용, 정부지원 사업 등과 관련하여 같은 직무를 가진 동료로서 교류를 3년 이상 지속했다. 가끔 플링크로 이직하면 어떤지 제안을 하기는 하였지만, 로사는 본인이 아직 이 팀에서 할 일이 남았노라고 단칼에 거절하곤 했다.
그리고 3년이 훌쩍 지나서 2020년.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플링크 팀은 매우 분주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시기에 로사를 만나 여느 때와 같이 서로 진행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오랜 기술개발 시기를 지나서 사업화를 하는 시기에 다다랐으니 플링크 팀에 오면 어떻느냐고 여느 때와 같이 제안을 하였는데, 그 날은 로사의 대답이 달랐다.
"왜 제가 플링크에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제 자신이 기술 제품에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기여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보여요."
...
그리고 다시 3년이 훌쩍 지나서 2023년.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인다던 로사는 2020년 플링크 팀에 와서 가장 먼저 핵심 가치와 채용부터 정비하였다.
로사는 대학 시절에 경영학을 전공하기도 하였지만, 조금은 특이하게도 인류학을 함께 전공했다. 인류학을 전공했던 로사는 유난히도 공동체 관찰, 그 안의 구성원들 인터뷰,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서 인터뷰이들이 이야기하는 수 많은 두서없는 내용들 속 여러 중요한 핵심 요소들을 추출하고 그 요소들이 핵심 요소가 맞는지 다시 공동체 내에서 검증하는 것에 매우 실력이 있었다.
플링크는 2017년에 팀원들이 한 명 씩 늘어나게 되면서 우리 팀이 지키고 싶은 핵심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궁리, 소통, 정의였는데 사실 추상적인 세 개의 단어인지라 입사 시기에 따라서, 또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각 단어를 해석하는 것이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은 큰 문제는 되지 않았고 너무 다른 일들이 바빴기 때문에 핵심가치는 일단 멋지게 홈페이지 대문에 걸어놓는정도의 용도였다.
로사는 입사한 후 이 핵심가치에 영혼을 한 숨에 불어 넣어버렸다.
처음에는 여러 차례에 전사 모임에서 핵심 가치를 주제로 소그룹 활동을 하도록 했다. 사실은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팀원들은 도대체 핵심가치 '따위'는 이러나 저러나 일하는데 상관없는데, 자꾸 학생처럼 활동을 시키니 탐탁치 않아했다. 그래도 활동을 하면 할 수록, 바로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 권장되는지 아니면 적당히 걸러서 좋은 이야기 위주로 하는 것이 권장되는지. 혹은 지각 안하면 정의로운 것인지, 성과를 위해서 기존 체계를 잠시 무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력이 좋다고 평가할 것인지 등등 도대체 플링크에서 권장하고 칭찬하는 행동과 지양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팀원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소그룹 활동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핵심가치가 채용 과정에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아서 그냥 때론 소통 능력은 의심되나 실력만 좋은 사람이 입사하거나, 혹은 실력은 부족하지만 인터뷰를 잘 본 사람이 입사하거나, 또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는 현상 들도 전부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
그 후 지루하게 이어진 팀원들간의 인터뷰, 핵심가치 재정립을 위한 수 차례 회의를 소집하여 세 개의 대분류, 그리고 그 안의 세 개의 중분류, 그리고 또 그 안의 세 개의 항목이 배치된 27개의 행목을 추출하여 정리 해 냈다.

그리고 그 후 모든 채용 면접 프로세스, 질문 문항, 직무 평가에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모두 변경하고, 슬랙에는 매일 아침 10시 핵심가치 27개 문장 중 한개가 노출되도록 작업을 했다. 그리고 본인은 핵심가치의 전도사가 되었으며, 본인 스스로 핵심가치 수호의 모범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로사가 착수한 일은 회사 내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공개될 수 있도록 문서 체계와 회의 체계를 정비했다. 그리고 더 한 팀으로서 일 할 수 있는 여러 행사를 표준화 하고 직접 운영했다.
특별히 로사는 '비전위원회' 라는 회의를 필요할 때 주최하고 운영했는데 이 비전위원회는 늘 특별했고, 탁월했다.
"회사의 비전은 창업자나 대표 같은 사람들이 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우리 회사가 창업한지 7년이 지났고 인원이 16명이 있는데 우리가 각자 성장하고 생각하는 속도가 비슷할까? 숫자로는 성장하고 있는데 개개인은 성장하고 있을까? 각자 생각하는 서비스의 1년 뒤, 3년 뒤 모습은 얼마나 비슷한걸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이야기하고 생각을 동기화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로사는 회사 비전에 관심이 있는 팀원들에게 6개월, 1년, 1년 반 뒤에 각각 페이지콜의 기능적/ 제품적 모습이 어떨지 묘사하는 것, 페이지콜 고객사의 수, 매출의 규모, 페이지콜 사용자들의 모습 묘사하기, 각 시기마다 플링크가 겪고 있을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예측하기, 각 개인과 팀은 어떤 부분이 얼마나 더 나아졌을지 등에 대한 의견을 모두 수합하고 서로 생각들이 얼마나 다르고 기상천외한지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문서를 만들어 소집하곤 했다. 인류학사 소지자 로사(Rosa).
한번은 로사에게 플링크 혹은 페이지콜이 무엇인지 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로사의 대답은

"저는 정원사라는 비유를 정말 좋아해요. 사실 그 비유는 류시화 시인이 쓰신 글을 보고 좋아하게 됐는데요. 저는 우리 조직이 저의 정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정원에 굉장히 몰입되어 있어서 어떻게 정원을 잘 가꿀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아요. 조직의 성장과 저를 굉장히 얼라인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약간 종교같다랄까... 저는 개인적으로도 제 인생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중에 한 표현형이 페이지콜인 것 같아요. 페이지콜이 제 인생의 중요한 화두고요."
플링크의 정원사 로사는 2023년 조직이 진심으로 갈망하는 비즈니스 성장을 위해 또 본인의 앎의 지평을 넓히고, 창의적인 전략들을 도출하여 플링크 정원을 가꾸고 있다. 지금은 플링크 구성원들 모두 로사가 아름답게 정비한 조직문화 정원, 채용 프로세스 정원을 누리고 있고, 이제는 로사가 가꿀 비즈니스 성장의 정원을 지켜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