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지03 : 개점폐업상태

창업일지03 : 개점폐업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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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한 팀으로서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당장 우리 삶이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라이언과 타미는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개발을 했고 나는 개발 외 일들에 대해서 준비를 해 나갔다.

사실 개발 외 일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사업계획서를 쓰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타트업 지원사업이든 경진대회든 단 한 번 서류가 통과되지 않았다.

당시 만들던 회사소개서 중 일부 © 2023. 페이지콜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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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운이 좋게도 이전 스타트업을 할 때 알고 지내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께서 우리의 부족했던 사업 계획서와 서비스 데모 동영상만 보시고 선뜻 1,000만 원 투자를 하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도 각자 모아두었던 사업 종잣돈을 333만 원씩 각각 모아서 총 2,000만 원의 법인 자본금을 만들어 2015년 11월 16일 법인 설립을 했다.

이것이 주식회사 페이지콜의 시작이었다.

법인 주소지도 받을겸, 혼자 업무도 볼겸 사용했던 사무실

나로서는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모험의 세계였다. 법인 설립을 하고 세무서에서 사업자 등록증을 받아서 나오는데 내 가슴이 두근 거리고 비장함이 느껴졌다.

법인 설립을 하고 나니 꽤 진지하게 여러 일들이 진행되었다. 디자인이 아주 멋진 사이트는 아니었지만 학생들과 선생님이 가입을 해서 실제 수업이 가능할 정도까지는 서비스 개발이 완료 되었다. 그리고 라이언은 본래 본인이 오프라인 과외로 가르치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홍보했다.

그래! 이제는 우리가 광고만 시작하면 상상했던 대로 전국의 많은 학생들이 서울대 선생님과 과외 수업을 하기 위해서 달려올 것이다.

라이언과 타미는 전국의 350만 명의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 1%인 3만 5천 명 정도는 몰려와도 끄떡없는 시스템이라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2016년 1월.

아주 우연히도 첫 번째 학생이 들어왔다.

한 학생이 라이언의 고향에서 우연히 우리가 운영하는 서비스 소개를 받고 실제 수업을 받아 보겠다고 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아직 서비스의 가격을 얼마로 해야 될지 정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일단 기존 과외비와 비슷한 수준에서 말씀드리고, 특별히 라이언이 해당 학생의 수업을 직접 담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기록한 1월 전체 수업 시간 293분(minutes).

우리가 가정한 비즈니스의 기회 © 2023. 페이지콜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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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정한 비즈니스 모델대로 우리 서비스에 처음으로 돈을 지불한 고객이었다. 온라인이라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처음 겪는 수업 환경이라서 어색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 학생은 2월에도 결제를 했고 3월에도 결제를 했다. 그 학생은 우리 서비스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서비스를 좋아하는 고객이 3월이 되도록 그 학생 한 명뿐이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3개월간 아무런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열심히 '서울대 과외'니 '화상과외'니 키워드 들을 넣어 성심 성의껏 글을 썼다. 그리고 네이버 지식인에 입시와 수학 문제를 물어보는 학생들에게 정말 하나하나 맞춤형으로 답글도 달아줬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제발 주변에서 과외 구하는 학생 있으면 한 명이라도 소개를 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유일한 우리의 고객이 더 수업에 만족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라이언은 최선을 다해서 수업했다.

당시 매일매일 열심히 만들었던 디자인 애셋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고객은 한 명이었다.

시장에서 우리는 신뢰가 없었다. 우리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매 달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교육 서비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집까지 친절히 찾아가는 대학생 선생님들이 너무 많아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선호하지 않았고, 비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그 나름대로 지역 명문 학원들을 다니고 있거나, 아니면학교 자체 자율학습 등으로 선배의 선배의 선배부터 이어져오는 익숙한 학습 방법들을 갖고 있어 새로운 화상과외를 시도하는 것에 망설였다.

묘하게 느껴지는 패배감, 그리고 바닥이 보이는 자본금 2,000만 원. 거기에 더더욱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벤처확인'이었다.

타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일본 대학이 '군 휴학'이라는 제도가 있을 리가 없어서 그냥 쭉 대학을 다니고 미필로 창업을 한 상태였던 것이다. 타미가 현 상황에서 군대 입영일을 늦추는 방법은 '창업자 입영 연기'였다. 그런데 이 창업자 입영 연기를 하려면 '벤처 확인'을 받아야 했다.

타미는 16년 2월까지 군대 연기가 되어있는 상태였고, 만약에 적절히 입영 연기를 미리 하지 않으면 3월부터는 언제라도 영장이 날아올 수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2월 말 이전까지는 벤처확인을 받아야 모든 상황이 해결되는 것이었는데 이 벤처확인을 받는 것이 초기 기업에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벤처 확인을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현실적으로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신청이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4천만 원 이상 보증을 받기만 하여도 벤처 확인을 받을 수 있는데, 기술보증기금은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출처 : 기술보증기금 홈페이지
"매출은 있나요? 전공자 있나요? 현업 경력 3년 이상은요? 자격증은 있나요? 특허는 있어요? "

기술을 평가한다고 해서 우리 기술과 관련하여 자료들을 열심히 준비 해 갔는데, 결국 계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물었다. 그리고선 대출 한도가 4천만 원이냐 3천만 원이냐 문제가 아니라 그냥 보증 자체를 해 줄 수 없다고 알려왔다.

돈은 떨어져 가고, 공동창업자 친구 한 명은 이제 군대에 끌려가게 생겼고, 당장 매출이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는 않고 이렇게 반짝 창업 경험을 하나 더 쌓게 되었구나 하며 매일 밤 괴로움에 잠이 오지 않았다.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창업할 때 선뜻 1,000만 원을 투자 해 주신 투자자에게 면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대로 망하게 되면 다시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솔직히 상황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투자자와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