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일지03 : 꽃이 자라지 못하는 백 가지 이유

광야일지03 : 꽃이 자라지 못하는 백 가지 이유
Photo by Kelly Sikkema / Unsplash

2018년까지 페이지콜의 변화를 요약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2015년 ~ 2018년까지 페이지콜의 변화

보통 화상과외 서비스는 여러 기능들을 필요로 한다. 주로는 학생 관리, 강사 관리, 수업매칭, 수업기록 관리, 결제 관리 등의 기본적인 관리 기능이 필요하고 동시에 실제 수업을 위한 영상 통신 및 화이트보드 관련 기능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화상과외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있을 때 외부의 몇 몇 회사에서 우리가 화상과외 서비스에 만들어놓은 영상통신 기능과 화이트보드 기능을 사용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던 적이 있었다. 경영 컨설팅 회사, 법무법인, 광고 회사 등이 찾아왔었고 실제로 한 경영 컨설팅 회사와는 MOU 체결과 데모 진행도 해 보았다.

때로는 이러한 예비 고객들은

"그냥 갖고 계신 화상과외 서비스 그대~로 복사해서 강사, 학생 명칭만 상담사, 회원으로 변경만 해주시면 안될까요?"

라는 이야기를 자주했고, 나도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그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마치 텍스트를 복사-붙여넣기 하는 일쯤으로 생각하여 타미와 라이언에게 그렇게 하자고 제안하곤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타미와 라이언도 일단 우리가 만든 기능을 쓰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어떻게든 뭐라도 시도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실제 그렇게 내 부탁을 고맙게도 들어줬다.

그런데 문제는 화상과외 서비스 운영하면서 알게 된 오류들을 수정하면 타미와 라이언은 같은 일을 컨설팅 서비스에 반복해서 작업해야 했다. 그리고 컨설팅 쪽에서는 잘 이용하고 싶으신 마음에 이런 저런 추가 기능들을 제안하시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화상과외에서는 절대 쓸 것 같지 않은 기능들이 제안이 들어왔다.

이렇게 되면 이제 결국 화상과외 서비스와 특정 업체의 컨설팅 서비스를 각각 개발하고 운영해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기에는 컨설팅회사에서 우리에게 내는 비용이 너무 적었고 확장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들이 느끼기에도 서비스가 딱 그들이 원하는 사용성이 아니다보니 당연히 사용 빈도수가 줄어들게 되고, 결국 서비스 사용도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모든 업체마다 이렇게 맞춤형 서비스를 만들어야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Skype가 이러한 산업마다의 특수한 사용성을 다 반영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Skype는 오히려 회원 관리, 매칭 등 기능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제하고 온전히 화상 전화, 저럼한 국제 전화라는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졌지만 충분히 글로벌하게 크게 성장한 서비스였다.

결국 우리도 메이크 페이지콜을 만들 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에 충실한, 가볍고 빠른 서비스로 방향성의 선택은 Skype 등 서비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팅 전 후 단계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Quick Meeting'에만 집중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심지어 Skype와 다르게 웹으로 바로 접속 되어서 앱 다운로드가 필요 없다는 것, 그리고 아이디로 상대를 추가하는 과정도 생략하였다.

당시에 만들었던 메이크 페이지콜 설명

결과적으로 메이크페이지콜을 잘 팔지 못했고 서비스를 종료하였다.

그렇다고 하여서 이 서비스의 방향성이 틀렸었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지난 광야일기2에서 서술했던 접속과 관련한 수 많은 오류들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았던 원인들은 정말 백 개 쯤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주요한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1. 처음부터 모든 플랫폼을 지원하기로 함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가장 좋은 것은 갤럭시를 쓰든 아이폰을 쓰든 맥북을 쓰든 윈도우를 쓰든 모두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각 사용 환경에 따라서 개발 환경이 다르다보니 대부분 서비스들은 주력으로 하는 플랫폼 (웹 혹은 모바일, 모바일이라면 안드로이드 혹은 iOS)을 하나만 먼저 오픈하고 다른 환경은 단계적으로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웹 브라우저가 돌아가는 환경이라면 페이지콜이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플랫폼 구분 없이 사용자들을 모았는데, 운영하다보니 각 OS별로 또 브라우저별로 특성이 있어서 예상치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화상통신 중에 Siri가 호출되면 마이크 권한이 뺏겨서 돌아오지 않거나, 특정 브라우저에서는 2명 이상 접속하면 먼저 들어온 사람의 영상 통신이 자동으로 종료되거나, 특정 기기와 OS 조합인 사람은 절대로 서로 영상과 음성 통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는 등 수 십 가지의 패턴화되지 않는 통신 에러들 속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다.

  1. 고객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을 잘못 예측함

우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이다보니 좋은 컴퓨터와 좋은 네트워크 환경에서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늘 QA테스트를 하지만 별 문제 없이 통과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이상하게 본 서비스로 나가면 예상치 못한 에러 리포트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에러 리포트 중 꽤 많은 비율이 고객들의 윈도우나 안드로이드 등의 기본적인 사용방법을 몰라서 생기는 것이 많았다. 본인이 음소거를 했는데 소리가 안들린다고 하는 경우, 크롬 브라우저로 접속하도록 알리면 크롬 브라우저를 다운로드 받아서 설치하고 다시 익스플로어로 접속하는 문제, 접속할 때 마이크 권한을 거부하고 마이크가 작동 안한다고 하는 문제 등등이 정말 많았다.

한 번은 페이지콜 접속 뒤로 네이버가 접속이 안된다는 에러 리포트가 들어왔는데, 도저히 논리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서 화면을 캡쳐해서 보내달라고 하니 never.com으로 URL을 입력한 것이었다. 예전에 익스플로어에서는 n만 쳐도 자동으로 naver.com이 완성되니까 한 번도 타이핑을 하지 않다가 크롬 브라우저로 오면서 주소가 자동완성이 안되니까 직접 타이핑하면서 생긴 오타였는데, 그 고객은 페이지콜이 유명한 서비스가 아니다보니 '크롬 브라우저'라는 것을 깔게 시키고 그리고 갑자기 네이버가 안들어가지니까 페이지콜은 피싱 업체이거나 바이러스이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1. 재현되지 않는 화이트보드 문제들이 생각보다 많았음

그리고 화이트보드에서도 이런 저런 문제들이 꽤 발생했다. 일단 화이트보드 내에서 고객들이 하는 행동들이 꽤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들도 많았다. 예를들면 분명히 초반에는 수업이 잘 되는데, 30분 쯤 지나가기 시작하면 필기가 안된다거나, 분명히 수업을 잘 하고 저장을 했는데 랜덤하게 필기 획이 사라졌다거나 등등 기상 천외한 일들이 꽤 많이 일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문제를 동일하게 재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일단 소프트웨어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고장나는 방법을 명확하게 알게 되면 일단 문제 해결의 절반은 온 것이다. 분명 간헐적으로 문제는 생기는데, 분명하게 그 방법을 모른다..? 그러면 지름길이 없이 누군가는 하루종일 수 만 획씩 그리면서 해당 에러가 재현되는 조건을 찾아야만 했다.

페이지콜팀의 캔버스 폭파 테스트 (aka 캔폭테)
엔지니어들의 도전
엔지니어들의 도전

단순하게 제품과 고객 면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꼽을 수 있지만, 여기에 조직의 채용 이슈와 재무 이슈 등 수 십 가지가 곱사건으로 결합되면 정말 사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그렇다.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 단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