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일지02 : 사막에서 피어오른 꽃
그런데 첫 서비스 이름이 '페이지콜'이 아니고 구차하게 '메이크 페이지콜'이었을까.
그 이유는 사실 홈페이지 도메인 때문이었다.
당시에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았지만 pagecall.com 을 누군가 이미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해당 도메인을 사고 싶으면 연락을 하라고 쓰여있어서 연락을 해 보았더니 해외 도메인 브로커는 $20,000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pagecall에 동사 make를 하나 더 붙여서 서비스 이름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메이크페이지콜을 '베타'라는 이름으로 오픈하고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2018년 6월
여전히 제대로 잘 접속되지 않았고 너무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팀의 분위기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여러 오류들은 으레 서비스가 오픈하고 견뎌야 할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였고, 그래서 '금방' 해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수 많은 오류들과 전쟁하고 있는 사이에, 유일한 고객사였던 화상과외 서비스는 매 월 사용량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메이크페이지콜이 엄청난 오류들에 시달린 반면, 해당 화상과외 서비스는 그래도 꾸준하게 사용량이 늘 수 있었던 이유는 사용 환경의 통제 여부였다.
우리는 B2C, 즉 누구나 서비스에 가입해서 즉각적으로 화상회의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방향성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 환경을 통제하지 않으니 엄청 다양한 조합의 하드웨어, OS, 브라우저의 케이스를 전부 고쳐야만 비로소 사용자들이 서로 만나서 자유롭게 화상 통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접속 기록을 보면 출시된지 15년이 지난 윈도우즈 XP로 접속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화상과외 서비스는 누가 접속하는지를 미리 알고 있다보니 강사와 학생의 접속 환경을 미리 통제했고, 미리 '수환테(수업환경테스트)'를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그리고 강사들은 미리 사전 교육에서 온라인 강의실 사용방법을 익히도록 하였기 때문에 첫 수업에서 많이 당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페이지콜팀이 2017년 10월 해당 화상과외 서비스를 영업양도 했을 때 월간 사용량이 10,000분 수준이었는데 2018년 6월에는 사용량이 60,000분까지 늘었다. 1년도 안되어서 6배 이상 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해당 업체와 매 월 온라인 강의실 사용 시간에 비례해서 사용료를 정산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 메이크 페이지콜은 열 명의 팀원이 매일매일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0원이었지만, 2015년에 라이언과 타미가 만들어놓았던 과거의 소프트웨어가 매 월 돈을 벌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매 월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매출이 늘었다!
나와 라이언은 해당 업체 대표님과 가끔 식사도 하고, 비즈니스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였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결국 우리가 새로 만들고 있는 메이크 페이지콜 시연도 하게 되었는데 대표님께서 메이크 페이지콜을 위해서 개선한 사항들을 화상과외 서비스에도 적용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사실 지금(2023년)처럼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이 널리 보급된 상황에서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애플펜슬이 불과 2015년에 1세대가 처음 출시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태블릿에 직접 펜을 사용해서 입력하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화상과외 서비스에서는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이 '디지타이저'라고 불리우는 장비를 갖춰야만 수업이 가능했는데, 이 디지타이저는 화상과외 서비스 성장의 가장 큰 병목이었다.
일단 도매가격으로 가지고 오더라도 4~5만원 수준이었고,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마진없이 판매한다고 하여도 안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화상과외인데 초기 도입비용처럼 장비 비용이 드니 고객 전환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반면 메이크 페이지콜은 안드로이드 태블릿에서 접속을 지원했기 때문에 만약에 메이크 페이지콜에서 개선한 사항들을 화상과외 서비스에 적용 해 드릴 수 있으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임은 명확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메이크 페이지콜이 다른 서비스에서 연동하여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기획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예전에 담궜던 묵은 김치를 가지고 전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버렸는데, 김치찜 사장님이 김치볶음밥이 맛있다며 김치를 매 월 납품 해 줄 수 있냐는 것과 비슷했다. 심지어 우리는 그 김치 조차도 과거 감에 의존해서 소량으로 담구고 있을뿐, 맛이 일관성 있게 표준화된 김치를 주기적으로 대량으로 만드는 일은 해 보지 않았다.
사실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때에는 새로운 기능들을 메이크 페이지콜만의 특별한 기능으로 유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워낙 메이크 페이지콜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서 '김치 공장'을 만드는 일은 우선순위에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매 월 '김치찜 사장님'의 구매력이 좋아진 반면, 문제 투성이 메이크 페이지콜은 고쳐도 고쳐도 베타를 벗어날 수 있는 기미가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2018년 6월 메이크 페이지콜을 수리하는 일은 중단하고, 페이지콜을 다른 기업들이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API)를 설계하고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방향성의 제품 이름을 페이지콜 API (Pagecall API), 즉 PCA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4개월간 라이언이 분투노력하여 2018년 10월에 고객의 화상과외 서비스와 페이지콜 API를 처음으로 연동하였다.
이것이 2023년 현재까지 5년째 망하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우리 팀의 대표 서비스 페이지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