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일지01 : 온실 속 화초 페이지콜

광야일지01 : 온실 속 화초 페이지콜
Photo by Finding Dan | Dan Grinwis / Unsplash

이 광야일지는 바로 이 전 창업일지의 마지막 부분이었던 2017년 9월 페이지콜팀이 현금 5억 원, R&D 지원금 5억 원을 가지고 야심차게 골드 러쉬를 떠났다가 광야에 빠져들어 수 년간 헤어나오지 못한 스토리이다.

약 6년 간 고통받던 광야는 크게 세 가지 흐름이 있었다.

  1. 시장이 원하는 수준의 기술을 구현하지 못했던 시기 (2017~2019)
  2. 운 좋게 시장과 고객이 생겼지만 우리 실력을 과대평가하던 시기 (2020~2021)
  3. PMF와 이상적인 고객 프로필(이하 'ICP')을 알았지만, 그보다 확장성(Scalability) 그 자체에 고집부리던 시기 (2022)

이러한 광야의 시기들을 거치며 우리가 만들었던 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2018~2023.04 페이지콜이 시도했던 서비스들 타임라인

Realtime Online Canvas (17.09 ~ 18.09)

페이지콜팀은 사실 운이 좋았다. 아니... 좋았을 뻔 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직접 운영하던 화상과외 서비스가 2017년 09월 투자 이후 믿음직한 파트너사에게 영업 양도되었고, 그 서비스가 즉각적으로 2017년 9월에 페이지콜의 첫 번째 고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첫 고객사는 2023년 현재 기준으로 보았을 때 팀이 집중하고 있는 ICP와 동일하고, 심지어 뒤 이어 들어온 두 번째 고객사도 첫 번째 고객사와 거의 같은 고객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즉, 광야에 들어가기전 우리는 명확한 PMF의 증거를 눈 앞에서 두 고객의 계약으로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 때부터 이 두 고객사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개발했었더라면 긴 광야 생활을 거치지 않았겠지만, 역사에는 가정이 없는 법.

그 때 나는 두 사례가 특이한 사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고객군에 집중하면 시장이 너무 작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당시는 코로나 이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교육 서비스를 운영하려던 업체가 거의 없었고, 그러다보니 교육이라는 특정 산업에 귀속되기보다는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산성 도구로서 페이지콜을 포지셔닝 하려는 판단이 더 팀 내외에 설득력이 있었다.

2017년 09월 당시 첫 고객사에 판매되었던 Realtime online canvas 모습

현재 페이지콜의 주춧돌이 되었던 Realtime online canvas는 우리가 별도로 사업화를 위해서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직접 화상과외 서비스를 위해서 만들었던 소프트웨어의 일부였다.

당시에는 iOS에서 WebRTC를 본격적으로 지원하지 않던 시기였고, Android도 굉장히 단순한 화상 통신만 구현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모바일 기기에서 통신은 지원하지 않고 오직 Windows와 Mac에서만 사용을 보장했다. 그리고 미디어 통신을 P2P 형식으로 직접 구현했는데 그러다보니 다자간 연결 및 방화벽 등의 특정 조건에서 통신이 불가능한 이슈 등이 혼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Active X 설치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논란이었을 시절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추가 프로그램 설치없이 웹 브라우저만으로 영상, 음성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파격이었고, 기술적인 진보였다. 이 외 현재의 페이지콜까지 이어져오는 문제 풀이 공간인 서브페이지 기능, 실시간으로 학생과 선생님의 접속 상태를 체크하여 분 단위로 과금하는 시스템, 선 단위로 지워지는 지우개 기능 등이 다른 화상 회의툴과는 다른 길을 택하여 구현되어 있었다.

메이크 페이지콜 Make Pagecall (=MPC) (18.01 ~ 20.06)

그렇다면 2017년 09월 투자 이후 운영하던 화상과외 서비스를 왜 영업양도했는지를 조금 더 설명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2년간 서비스를 어렵게 운영하면서 심리적으로 교육 비즈니스 운영에 대해 창업자가 모두 지쳤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온라인 교육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잘 작동하는 화상 교육 솔루션은 필수였지만, 일단 서비스가 시작하고 나면 성장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잘 모객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교육 서비스의 특성상 서비스의 선택과 지출 의사결정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하기 때문에, 나와 라이언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부모님들과 상담하는데 할애했다.

그런데 대부분 초기에 우리를 찾던 분들은 기존 학원, 학습지 등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분들이 검색 하다 하다 구석지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오신 학부모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녀 학습에 대한 걱정, 하소연이 많으셨고 그러다보면 서비스 소개는 커녕 입시 상담과 하소연 들어 드리는데 하루에 세 네 시간씩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당시에 우리가 상담용으로 사용하고 있던 전화가 LG 싸이언이었는데, 나는 지금도 LG 싸이언의 기본 벨소리가 들리면 소름이 돋는다. 그만큼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 너무 공포스러웠고,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영업양도 이후 교육 서비스에서 가장 멀리 도망가고 싶었던 것은 너무 당연한 생존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창업 2년만에 약 10억원의 투자와 함께 주어진 절호의 피봇 기회였으니 우리는 피봇 그 자체에 몰입했고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고자 다짐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도를 가지고 피봇을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투자자들에게 우리 팀의 기술을 '실시간 데이터 동기화 기술'로 소개했고, 최소한 이 기술의 방향성까지는 바꾸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속 만든 첫 기획은 Google Docs같은 실시간 문서 협업서비스 만드는것을 목표했다. 그러나 중간에 타미가 결국 군대 문제 해결을 위해 팀을 떠나게 됐다.

그러다보니 기획의 범위를 좁혀서 기존 Realtime online canvas의 문제를 개선하되,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협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다.

이 때 페이지콜 Pagecall이라는 이름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새로운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전화는 전화인데, 페이지를 보면서 하는 전화라는 이름으로 '페이지콜'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당시 Make Pagecall 화면
당시 Make Pagecall 화면

당시 Make Pagecall 홍보 동영상

가격은 일단 공짜! 지난 버전과 다르게 Android 기기를 지원했고,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었다. 또 지원하는 컨텐츠 파일 형식도 대폭 확장했고, 미디어 관련한 권한 기능도 촘촘하게 기획을 해서 넣었다.

그러나 Android 기기를 지원하지 못했고,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하지 못했다. 또 지원하는 컨텐츠 파일 형식도 확장하지 못했고, 미디어 관련한 권한 기능도 잘 작동하지 않았다.

온실 속 화초였던 페이지콜이 세상으로 나와서 보니, 페이지콜은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였다.

회의실에 분명히 접속했는데 서로 보이지 않는 일. 누군가 접속하면 기존에 접속한 사람이 쫒겨나는 일. 얼굴은 보이는데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일. PDF 파일을 업로드하다가 웹브라우저가 오류나서 꺼지는 일. 분명히 회의를 했는데 기록이 저장되지 않는 일 등등 경향성 없이 수 많은 문제들이 우리 내부 테스트를 하는데도 매 일 리포트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고치기에 우리 팀의 역량은 부족했고, 경험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웹 브라우저에서 WebRTC로 이러한 상용 서비스를 구현한 사례가 많지 않다보니 주변에서 도와 줄 팀도, 사람도 없었다. 그냥 포기하거나, 해결이 될지 모르지만 해결을 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라이언이 묵묵히 매일 수 많은 문제와 싸우는 사이에 회사는 고객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TIPS 자금으로 15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경력이 긴 엔지니어가 해결을 해 줄 수 있을까 싶어서 시니어 엔지니어를 모셔보기도 하고, 혹은 학력이 좋은 팀원이 영리하게 문제를 함께 해결해줄까 싶어서 선발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온실 속 화초 페이지콜이 혹독하게 현실에 나와 단련이 되는 기간이 3개월, 6개월, 12개월... 그리고 24개월이 지나 2019년 6월 정말 길게 느껴졌던 TIPS 지원 기간이 끝나게 되었다.

매출이 없고, 성장하지 않는 회사에는 팀 문화도, 신뢰도, 존중도 없는 법.

팀은 서로 싸웠고, 서로를 미워했다. 서로를 믿지 못했고, 서로를 탓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나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팀을 떠났다.

창업 4년차에 찾아온 지옥같은 시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