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지05 : 첫 사무실, 그리고 본격적인 시작

창업일지05 : 첫 사무실, 그리고 본격적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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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먼저 와 있던 라이언과 타미는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라이언과 전화로 '억대 투자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 화가 났다. '억대 투자금'이 어떤 의미인지 지난 사업을 망하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상태를 보면 '억대 투자금' 이 들어올리가 없는데 또 누가 감언이설로 이 둘을 속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단단히 일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라이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오늘 라이언과 타미는 둘의 고등학교 선배이자, 둘의 고향이기도 한 광역시에서 학원을 크게 하고 계신 학원의 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고 했었다. 그 학원은 라이언도 중학교 때 열심히 다녔던 학원이기도 하고, 창업 전에도 라이언은 그 선생님에게 조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둘의 사교적인 활동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라이언도 당연히 이제 막 창업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창업한 서비스에 대해서 선배님에게 열심히 설명했을터.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오래전 제자가 창업을 했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주시고 투자를 1~2억 원 정도 해 주시겠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나니 화는 어느새 누그러들고, 그래도 라이언과 타미에게 신뢰를 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도 전문 투자자는 아니셨고, 우리 입장에서도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한 상황이기에 낮은 회사 밸류에이션에 너무 엔젤 투자를 많이 받게 되면 추후 추후에 전문 기관 투자를 받을 때 선택에 제한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며칠 전에 엔젤 투자를 약속 해 주신 신사분과 동일한 금액, 동일한 조건으로 부탁 드렸고 흔쾌히 동의 해 주셨다.

이후에도 선생님은 우리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라이언과 타미의 고등학교 선배님들을 더 소개 해 주셨고, 우리는 총 다섯 분의 개인 엔젤 투자자로부터 7,000만 원 투자를 약속 받았다.


2016년 3월, 투자자들이 약속했던 주금을 납입하기로 했던 날.

오전 일찍부터 점심 시간 즈음까지 적게는 몇 백 만원부터 몇 천만 원까지 법인 통장으로 입금이 속속 들어왔다. 그때 고작 26살, 31살이었던 우리에게는 7천만원은 개인 차원에서는 벌어보지도, 소비해보지도, 가져보지도 못한 너무 큰 돈이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 나는 이 정도의 돈이면 사업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될 수 있는지 감이 정확히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는 몇 개월 더 생존할 수 있겠구나는 계산할 수 있었지만,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할지까지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주금 입금을 받은 그 날에 우리 셋은 모두 묘하게 이제 사업에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투자를 받고, 제일 먼저 함께 일 할 수 있는 사무실을 구했다.

서울대입구 사거리, 한 오피스텔의 지하상가 한켠에 창문은 하나도 없었지만 벽 모든 면이 거울로 도배되어 있던 곳. 과거에 오피스텔의 입주민들을 위한 헬스장 공간이었다고 했다. 처음 들어가 본 그 순간 그냥 그곳이 좋았다. 그래서 바로 계약을 했다.

2016년 3월 10일 우리는 첫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모였다.

IKEA에서 막 돌아와서 찍은 사무실 파노라마뷰.
그리고 정리한 후 오후에 찍은 파노라마뷰. 정말 사무실이 넓었다.

사실 이사를 할 것이 없었다. 첫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각각 컴퓨터만 옮기고 아침 일찍 함께 IKEA에 가서 저렴한 책상, 책꽂이, 서랍장, 옷걸이를 구매했다. 그리고 인터넷선 연결을 신청했다. 그래도 의자는 오래 앉아있을 것이니 좋은 의자를 구매하자고 셋이 큰 맘먹고 분당까지 가서 의자를 직접 앉아보고 구매했다. 가구 사장님이 젊은 친구들이 창업한 것 잘 되라고 할인도 많이 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난 이후 사무실의 모습. 시계 옆에 사업자 등록증을 멋있게 걸어두었다.

사무실이 생기고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뭐하러 이렇게 넓게 사무실을 빌렸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냥 뭐래든 우리는 첫 사무실이 생겨서 좋기만 했고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필요한 물건들을 샀고 정리했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았고 1분 1초라도 더 사무실을 이용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뿔뿔이 흩어져있던 라이언, 타미와 나는 드디어 한 공간에서 업무를 시작했고, 이제는 모든 업무에서 속도를 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