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지07 : 비주류 스타트업

나는 매 월 5일이면 정산을 했다.

선생님들의 지난 한 달 수업 시간을 체크하여 수업비를 보내드리고 수고하셨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간 사용했던 모든 영수증을 일 별로 정리하고 엑셀에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급여를 챙겼다.

창업하고 반 년간은 셋이 각각 140만 원씩 급여로 받아갔는데 창업 7개월차부터는 그마저 110만원으로 줄였다. 그리곤 최대한 사무실에 컵밥 1,400원짜리를 수 박스를 사서 두고 함께 식사를 해결했다. 처음 컵밥을 먹었을 땐 "우왓 1,400원으로 식사가 해결되다니 너무 좋다" 라고 생각했는데, 북어국을 먹으나 미역국을 먹으나 늘 똑같은 국물맛, 그리고 푸석거리는 밥에 금방 컵밥의 매력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냥 먹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백 만원 가까이 정산 받아가는 선생님도 한 명이 생겼고, 수 십만원 수준으로 정산을 받아가는 선생님들이 열 명 남짓이 생겼다.

좀 더 버틸 수 있으면 매출 이익이 고정비를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지만 냉정하게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잔고가 바닥이 날 확률이 99% 쯤이었다.

좀 더 오래 버텨보고 싶어서 그래도 잔고가 넉넉하다고 생각했을 때 미리 급여를 30만원씩 줄여서 월 100만원씩 절약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는데, 절약한 보람도 없이 속절없이 잔고는 0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냥 여느때와 같던 10월 어느 날. 라이언의 생일이 찾아왔다.

그래도 생일인데 컵밥이든 인조향이 가득한 숯불갈비김밥을 먹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익숙하지도 않던 홍대로 무작정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셋 다 홍대 식당가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기에 네이버에서 추천 음식점을 검색했는데 한 음식점이 나와서 가보자고 했다.

North Shore.

내년 라이언 생일엔 우리 꼭 회사 성장시켜서 하와이에 있는 "노스 쇼어"에 가자고 이야기하며 시끌벅적하게 하와이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날 오묘하게 이 전에 했던 사업체의 문 닫기 전 느꼈던 묘한 냄새가 코에서 났다. 다른 사람들은 가을 냄새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실패의 냄새이고 이별의 냄새였다.

수능 30일 전 나는 냄새.

데드라인 앞에 무기력감이 느껴질 때 나는 냄새.

사업이 기울어져 갈 때의 선택들은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

자원이 넉넉할 때 선택의 실패는 다 조직의 학습이고 경험이지만, 정말 마지막 순간에는 선택의 실패는 곧 죽음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 집중해서 선택들을 하나 하나 잘 했고, 상황이 나아졌다"라고 서술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11월이 되니 고3 수험생들이 싹 빠져나가서 매출이 갑자기 25%가 줄었다. 심지어 넉넉히 수능 준비를 위해 수강권을 결제했던 학생들이 수능이 끝나자 남은 수강권을 환불하는 바람에 생각지 못한 지출이 11월에 줄줄이 이어졌다.

밤에 잠이 잘 안 왔다. 정말 아끼면 내년 2월, 아니면 1월에 잔고가 0원이 될 것이 명확했다.

그러면 사무실 보증금 빼서 결제한 학생들 환불 해 주고,
선생님들 수업비 결산 해 드리고,
그리고 남은 금액은 투자자들에게 미미하지만 돌려드리고,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나의 두 번째 도전도 마무리 하면 되는 것이다.

라이언은 학교로,
타미는 대학원 전문연구요원으로,
나는 엔젤투자 해 주신 분들 회사에서 일을 도우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편, 양초의 끝자락이 내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한 지하 사무실은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각자 이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이 달라 조금은 불편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주로 서비스를 운영하던 나와 라이언은 화상과외 서비스를 좀 더 잘 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 순간을 잘 넘기면 잘 될 것 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미는 지금이라도 화상과외는 빨리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자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방향성은 무엇인가, 이미 수업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신뢰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등등 티격태격 계속 다퉜지만, 그래도 결국은 라이언과 내 주장을 타미가 납득했다. 운영하던 화상과외를 더 열심히 해 보기로 마음을 모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몇 주 내에 1-2천 만원이라도 더 구하지 못하면 어차피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된다.

2016년 당시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 사람들의 인식 속에 '주류 스타트업'이라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었다.

고벤처포럼, 디캠프, 팁스타운, 마루180, 구글 캠퍼스 등의 키워드로 사람들의 인식 속 공유되는 '주류'의 흐름이었는데 그러다보니 많은 초기 팀들이 강남~역삼 쪽에 터전을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확실하게 '비주류'였다.

봉천동 오피스텔, 지하 사무실, 삐걱 거리던 나뭇바닥은 확실하게 스타트업이라는 키워드에 가깝지는 않았다. 우리 사무실은 온갖 수학 문제집과 자습서로 가득 차 있었고, 오피스텔 빨래방과 붙어 있어 늘 세탁기 소리가 들렸고 심지어 빨래방 사장님과 전기세도 나눠냈다. 사무실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전부 타미, 라이언, 내 지인들 혹은 가끔 계약서를 작성하러 오시는 선생님 뿐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어떤 소신을 가지고 강남에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서울대입구역 주변 5분 거리에서 살고 있었기에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있는 것이 편했고, 또 튜터들을 모집하기에 서울대학교 앞에 있는 편이 선생님들에게도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봉천동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아마 우리가 디캠프나 마루180 등에 입주하고 있었다면 겪고 있는 자금난에 대해서 더 투자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해법을 찾고 금방 해결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까지만해도 거의 투자사를 만나 본 적이 없어서 투자를 받으려면 어느정도 회사 규모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없었다. 일단 주변에서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팀을 직접적으로 만나보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그냥 막연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창업 시작부터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제도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팁스(TIPS) 였는데, 창업 전 이런 저런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게된 참이었다. 하지만 팁스 역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고, 현업이 바빠 더 알아보는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 중 자금 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봉천동 비주류인 우리가 시도했던 방법은 1) 대출 2) 정부사업지원 3)외주 였다.

대출은 이미 16년 2월에 기술보증기금으로 4천만원 보증을 받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당장 이자 비용을 절약하고 싶어서 금리를 손해보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개설만 해 두고 사용하지는 않았던 상황이었다. 자금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선뜻 이 통장에 손을 대지 못했던 이유는 성장을 위함이 아닌 생존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대출을 사용하면 더 파국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는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16년 연대보증이 공식적으로 없어진 첫 해였는데, 기술보증기금 직원들도 이게 정말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어서 ("청렴경영 서명을 하고 의무를 지키면 연대보증이 면제 됩니다" > 청렴경영의 의무가 무엇인지 당시 나에겐 경계가 좀 모호했다.) 대출은 정말 정말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물론 우리는 순이익이 나지 않는 회사이기 때문에 일반 은행 대출이 될리는 없었다.

정부사업은 16년 내내 열심히 지원했다. 정부 사업 뿐 아니라 마루180이나 서울대학교에서 하는 여러 민간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지원했는데 늘 낙방했다. 늘 사업계획서 작성엔 진심이었기 때문에 낙방할 때마다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유일하게 내가 책임지고 있는 영역인데 좋은 결과가 없으니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서점에서 정부지원사업 작성 관련 서적들을 2-3권 구매해서 공부했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정부지원사업 합격한 사업계획서 샘플을 몇 개 구매했다. 그리고 최대한 합격한 사업계획서의 샘플을 따라해서 다시 작성을 했는데 웬걸? 3,500만원을 지원해주는 '창업사업화 지원사업'에 선발이 되었다. 새삼스레 관(官)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외주 기회를 찾았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개발 외주를 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3개월 이내, 금액은 1천만원 이상, 기획과 디자인 역량은 없기에 개발 업무가 위주인 프로젝트를 찾아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프로젝트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우리 서비스 개발과 운영이 더뎌지게 되고, 또 금액이 너무 적으면 발주와 계약에 드는 노력에 비해서 우리가 필요한 금액을 확보하지 못해 안 하느니만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또 동시에 팀 내 디자이너가 없어서 기획이나 디자인을 병행해야하는 프로젝트도 수행 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다. 또 라이언, 타미가 관련 전공자이거나 성공한 포트폴리오가 없다보니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서 발주 받기는 어려웠고, 주변 아는 팀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였다.

그런데 결국 또 도움을 받게 된 것은 '엔젤'투자자 덕분이었다. 우리 팀에 초기 투자하시고 기술보증사건부터 늘 관심을 가지고 물심양면 도와주시던 엔젤투자자 대표님의 회사에 마침 신사업 관련하여 테스트 할 것이 있었고, 그 프로젝트의 테스트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업무를 우리 팀에게 주시겠다고 했다.

한편, 그 즈음 우리는 창업 1주년을 맞이하였다.

1년 전 웹사이트 오픈만 하면 금방 바빠질 것 같이 열정 넘치던, 돈 벌면 하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던, 그리고 대학생같던 우리는 세상 풍파를 맞으며 온데간데 없었다.

봉천동 지하실에는 그냥 비주류 초보 창업가 3인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