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지02 : 오늘부터 우리는
"페이지콜 창업을 어떻게 결심하게 되셨어요?"
사실 나는 한 번도 내 삶에서 창업을 결심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는 장래 희망이 매우 자주 바뀌어서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는 줄곧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실제로 빨리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해외에서 박사를 하고 싶어서 대학교 1학년이 끝나자마자 입대를 선택했다.
그런데 대학교 졸업할 시기가 다가올수록 경영학도들이 으레 그렇듯 전략 컨설턴트가 되고 싶었다. 물론 컨설팅 회사에서 8주 인턴을 하고 나서는 이 일이 내가 생각하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차선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첫 창업은 번개와 같이 내 삶에 갑작스럽게 끼어들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지원했던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주관하는 '글로벌 창업 지원사업'이었다.
보통 인문계열에서 구직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소위 스펙 경쟁을 하게 된다. 당시 나와 학교 동기 몇몇은 이름이 '창업' 지원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나의 공모전쯤으로 생각을 하고 지원했다. 아마 정부에서 주관하는 지원사업에 선발된 경험이 있으면 구직활동에서 더 유리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덜컥 그 지원사업에 선발이 되어버렸고, 해당 사업의 필수조건이 바로 '법인 설립'이었던 것이 내 창업 활동의 시작점이다. 법인이 뭔지도 모르던 가여운 경영대 졸업반 학생이었던 나는 대표이사라는 거창한 직함의 명함을 갖게 되었고, 그냥 하루하루 허우적허우적거리다가 침강했다.
그리고 비로소 찾은 '수학강사'로서의 행복한 삶이었던 것이다.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학원에서 여름방학 특강을 앞두었던 어느 한가한 월요일, 라이언과 4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라이언은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화상과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도 설득하였고, 현재 고시촌에서 둘이 합숙을 하면서 사업 준비에 매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나는 라이언의 화상과외 비즈니스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화상으로 과외를 한다는 것이 어떨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고, 과연 그것이 직접 만나서 가르쳐주는 것보다 효과적일지 회의적이었다.
"형 한 번 이걸 보세요"
라이언이 스마트폰을 꺼내어 드디어 라이언과 타미의 첫 작품을 나에게 선보이던 시간이었다.
디자인은 조악했지만 웹브라우저로 마치 네이버 접속하듯이 홈페이지 주소를 넣었는데 페이스타임, 스카이프 같은 영상 통신이 되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라이언이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휘휘 그으니 마치 펜으로 종이에 필기를 한 것처럼 선들이 그려졌다.
순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식간에 회오리쳤다. 화상과외도 화상과외인데, 온라인으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모든 업종에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창업할 생각이 없었고, 라이언 역시 나에게 이 제품을 가지고 같이 사업을 해 보자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이 제품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설픈 조언만 했다.
신기해하는 내 모습이 고무적이었는지 라이언은 더 신이나서 이 제품이 어떤 기술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왜 진보한 제품인지 열심히 자랑을 했다. 나도 스마트폰으로 라이언이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를 이렇게 저렇게 계속 만져보았다. 핸드폰 위에서 부드럽게 필기되는 그 느낌이 퍽 신기했다.
바로 이 시점이 나는 의도치 않았던 두 번째 창업, '페이지콜호'의 매력에 이끌리어 승선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연인들은 명시적으로 "사귄다"를 고백으로써 명확히 하고 "오늘부터 1일이다"를 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냥 좋은 감정으로 만나기 시작해서 그 만남의 빈도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딱히 고백의 과정은 없었지만 배타적인 연인 관계임을 양쪽 모두 인지하고 만나는 경우도 있다.
사업도 그런 것 같다.
나의 첫 스타트업은 "우리 이제 같이 스타트업 하는 거다!"하고 명시적으로 서로 고백한 후 '창업이라는 과정'을 위하여 팀이 모이고, 아이템을 같이 고민하고, 실행을 하였던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라이언과 타미는 나에게 같이 스타트업을 할 거냐고 정식으로 물은 적이 없었고, 나 역시 정식으로 그 둘에게 팀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은 적이 없었다. 그냥 화상과외라는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빈도수가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일이 분담이 되고, 결국은 같이 법인까지 설립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냥 라이언과 타미팀이 여러 스타트업 경진대회나 정부 지원 사업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학원강사를 하면서 주말마다 사업계획서 작성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라이언이 써 두었던 사업계획서에 이렇게 써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는 정도였는데, 그래도 팀 내 유일한 '경영학사 소유자'로서 어느덧 팀 내에서 사업계획서를 전담하여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학원강사는 8월 14일에 그만두었다.
하지만 강사를 그만둔 이후 본격적으로 라이언과 타미와 하나의 팀이 되어 으쌰 으쌰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기술력이 좋은 똑똑한 두 친구들이 원만하게 창업할 수 있도록 법인을 설립하는 그 과정을 돕자는 생각 정도였다. 그리고 라이언과 타미는 더운 8월 날씨에도 고시촌 끝자락 허름한 집에서 합숙하면서 두문불출하며 개발했다. 그리고 나는 학원강사를 그만둔 후 찾아온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틈틈이 사업계획서를 썼다.
그러던 8월 말, 내 생일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라이언과 타미 모두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당시까지 서비스는 개발하고 있었지만 서비스의 이름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ㅇㅇ에듀 식의 이름보다는 중고등학생들 입장에서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 서비스 이름이었으면 했다. 또 동시에 우리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여주는 이름이었으면 했다. 그러던 중, 우리는 강사들을 일단 우리의 편의에 따라서 강사들을 서울대생으로 한정하여 운영하려고 했는데, 그런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서비스라는 것이 특징이니 이 부분을 잘 살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수학을 포기한 아이들은 수포자라고 부르는데 그 반대말은 뭘까요?"
공부의 신? 수학 능력자? 수학의 신? 이런 뻔한 이름들을 생각하다가, 그 당시에 '문법파괘자'라는 말이 유행이어서 "수학파괴자?" 라고 라이언이 이야기를 툭 던졌는데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비스 이름을 합의했다.
그리고 이 날이 내 기준에서 라이언과 타미를 '우리 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첫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