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지04 : 벤처확인. 그리고 두 번째 엔젤
보증이라는 업무는 결국 심사관이 대상 기업과 기술에 대해 리서치하고 작성하는 보고서에 따라서 심사가 이루어지다 보니 담당자 입장에선 아예 될성부른 기업을 평가하고 보증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인 구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만났던 기술보증기금 담당자가 우리에게 했던 계량적인 지표들에 대한 질문들은 우리를 딱 보니 경력 없는 젊은이들이 막 시작한 회사라 보증서 발급이 어려울 것 같으니 굳이 본인의 시간을 우리에게 쓰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지 않았을까.
투자 받은지 3개월도 안되어서 잔고가 얼마 남지 않고, 군대 입대 문제까지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았던 나는 투자 해 주신 대표님을 만나 면목없게 되었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런데 다행히 실망하시지 않고, 문제를 하나씩 함께 해결해보자며 본인이 오래 거래하시던 기술보증기금 지점의 담당자에게 직접 연결을 해 주셨다. 그리고 본인도 오랜만에 인사해야겠다며 기술보증기금 사무실까지 동행 해 주셨다.
소개를 받아서 간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 이 담당자는 우리 회사가 괜찮다고 생각하셨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본인이 초기 기업용 보증 프로그램 심사를 진행 해 보겠다고 했다. 실제로 보증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그냥 현장에서는 진행 해 보겠다고 하시고선 나중에 말을 바꾸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심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제 1월이 다 지나가고 2월이 오고 있어 두 달 내로 벤처확인까지 할 수 있을지 너무 불안했다.
한편 보증 업무를 위해 작성 및 제출해야 한다고 요청 받은 서류의 이름이 적힌 목록만 A4용지 한 장. 각 서류의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은데, 서류 이름들을 보며 이 서류는 어디서 발급받아야 하는지 찾아보는 일 자체가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드래곤볼 모으듯 모든 서류들을 겨우 다 준비해서 제출하니, 이제는 사무실 실사를 하셔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일을 하던 우리는 사업자 등록 주소를 위해 임시로 사용하고 있던 토즈 공용 사무실 회의실에 어설프게 다린 셔츠를 입고 모였다. 그렇게 겨우 진행한 실사...
불안하게 며칠 기다린 후 드디어 4,000만 원 보증이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벤처확인도 그 자리에서 바로 승인이 진행되었고 그렇게 바라던 벤처확인증서까지 갑자기 손에 얻게 되었다.
수 개월간 노심초사하며 간절히 원했던 '서류 한 장'을 받고 나니, 뭔가 긴장이 턱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날 저녁 우리는 늘 먹던 뻔한 롯데리아와 돈가스집이 아닌 아웃백스테이크 하우스에 갔다. 무언가를 성취하여 환희에 찬 시끌벅적한 테이블은 분명히 아니었다. 오늘 하루도 라이언과 타미는 열심히 개발을 하다가 잠시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뿐이었고, 나 역시도 타미의 군대 문제는 2년간은 유예가 되었으나, 아직 재정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기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1월에 법인 설립 때 모은 자본금 2,000만원은 원래 많지도 않았지만 세 명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아가며 비즈니스를 진행하는데도 4개월 차에 들어가니 이제 정말 돈이 부족했다.
사실 월급이야 당장 한 달 못 받아 간다고 하여도 갑자기 굶는 수준은 셋 모두 아니었지만, 여전히 회원 수 한 명으로 유지되고 있는 서비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광고비도 필요했고, 교재 구입비도 필요했고, 강사 모집 비용도 필요했다. 그리고 의사 결정을 더 민첩하게 할 수 있도록 함께 일할 사무실이 필요했다.
일단 타미의 군대를 유예할 수 있게 되었으니, 2년 정도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조금 더 투자를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제일 먼저 엔젤 투자를 해 주셨던 대표님께 혹시 다른 주변 분들을 소개 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는데 또 선뜻 본인 회사에 투자를 하셨던 한 개인 투자자분을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미팅에 함께 동행 해 주셨다.
소개 받은 분은 국내 한 대기업 전자회사 수석연구원 출신의 온화한 분위기의 신사분.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돈을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우리는 잔뜩 긴장해서 안 신던 구두까지 신고 우리의 비즈니스 계획에 대해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준비해 갔다. 신사분은 우리의 사업이나 기술은 묻지는 않으셨고, 그렇다고 우리 셋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묻지도 않으셨다. 우리를 소개 해 주신 대표님과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시다가 모든 미팅이 마무리 될 때 우리가 이야기한(주장한) 회사 가치가 얼마인지 확인하시고선 투자금을 언제 어떻게 보내면 되냐고 물으셨다.
너무 빠른 진행이었고,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또 죄송했고, 그리고 감사했다. 아마 우리를 소개 해 주신 첫 엔젤투자자를 신뢰하신 결과였을 터.
우리는 그렇게 2016년 2월 생명 연장을 하였다.
그리고 2월 말 어느 날 작은 공용 사무실이라도 얻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던 찰나 밤늦게 라이언과 타미가 급하게 억대 투자금을 받을 것 같다며 나한테 연락을 했다.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부랴부랴 나는 밤늦게 24시간 하는 카페로 뛰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