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지08 : 스타트업을 알려준 사람
2016년 12월 아주 어느 추운 겨울 날.
우연한 기회로 한 식사 자리에서 경제지 기자 한 분을 만나뵙게 되었다.
사실 그 자리에서는 소개 해 주신 다른 대표님과 같이 각자의 삶과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맛있는 식사를 하던 자리였을 뿐인데, 식사 후 뜻밖에도 기자님으로부터 우리 팀 취재 제안을 받았다. 신문 여러 섹션 중 '인물'의 소식을 싣는 공간에 우리 셋의 인터뷰를 실어보시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조금 의심스러운 생각과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간혹 사무실 전화로 여러 언론사와 방송사로부터 이런 취재 및 인터뷰 제안을 받았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한창 진행하고나면 결국은 취재비 혹은 제작비 명목으로 수 백만원을 요구 받는 경우가 많았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인터뷰의 의도와 다르게 지면으로 나갈까봐 괜한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른 분의 소개를 통해 만난 기자님이기도 하고, 실제로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기자님께서 지금까지 작성하신 기사들을 보니 그 방향성과 톤이 좋아 기사 진행을 부탁 드렸다.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사 초고를 주고 받는 과정을 거쳐 2017년 1월 3일 기사가 정말 지면으로 나왔다.
"지금 상상하는 더 놀랍고 유용한 기술을 꼭 완성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뜻을 같이하는 팀원들이 더 늘고 다른 청년들도 좋은 일자리를 많이 얻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기자님이 기사를 모두 작성하고, 특별히 새해 첫 인물 섹션의 기사이니 새해 소망을 짧게 적어서 보내달라고 하시어 고민하여 보냈더니 기사의 시작에 감사하게도 저렇게 적어주셨다.
우리는 실제로 사무실에서 셋이서 12시간씩 함께하다보니 별 별 이야기를 다 했는데, 우리의 꿈, 우리가 생각하는 회사,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 우리가 생각하는 제품에 대해서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셋 뿐이었고, 비주류로서 외로웠다. 우리의 비전을 공감해주는 팀원이 있었으면 했지만, 그 팀원에게는 정당하게 급여를 지급하면서 합류 요청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셋이서 할 수 있는 맥시멈까진 가 보아야 한다고 북돋았고, 그렇기에 이제는 외부 투자와 팁스에 도전을 해야했다.
당시에 팁스 프로그램에 추천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투자사는 10여곳 정도였는데, 그 리스트 중에서 익숙한 이름의 몇 곳을 마음 속에 만나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후 그 투자사를 만나볼 수 있는 행사는 전부 리서치해서 참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투자사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단 나의 피칭에도 화상과외 서비스와 기술 기업이 될 것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다보니 대부분 투자사들이 그래서 너희 팀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냐고 혼란스러워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지 납득이 잘 안 되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한 번 만나고 회사 소개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면 모두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막 데뷔한 아이돌의 매니저같았다. 여기 저기 방송국 돌아다니면서 우리 무명의 아티스트의 매력을 알려야했다. 열심히 음반도 작업하고, 춤도 연습했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 뻔한 컨셉, 뻔한 매력, 뻔한 노래, 뻔한 안무라고 무시를 당했다.
그렇게 뺑뺑이를 돌며 좌절하고 있던 내게 우연히 16년에 스쳐지나가며 만났던 서울산업진흥원(SBA)의 선임님이 오랜만에 이메일을 주셨다.
2012년 5월.
당시에 나는 경영 전공자로서 살아가다가 3학년 2학기에 뜬금없이 학부에선 도전을 해야 한다며 위세좋게 계산과학전공을 시작했는데, 아주 보기 좋게 수학 전공 과목들에서 매우 고생하고 있었다. 여기서 고생이란 좋은 학점을 받고 싶은데 힘든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전공 필수 과목을 이수 할 수 없는 수준의 고생이었다.
수강 취소하지 않고 버텨도 어차피 시험 성적 때문에 F 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었고, 전공 필수 과목을 이수하지 않고는 어차피 졸업이 되지 않으니 진퇴양난이었다. 아니 그런 상황에 또 학부 졸업 전에 교환학생은 가야겠다며 지원해 두었던 것이 또 덜컥 붙어버려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마냥 교환학생가서 여유 부리긴 어려웠고, 꼼짝없이 수학 과목 공부를 계속 해야 교환학생 끝나고 돌아와서 졸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대학 교과서들이 대부분 두껍다보니 아무리 추려도 책 들을 챙겨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보니 흘러 흘러 '리디북스'라는 전자책 사이트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전자책이라하면 아무도 서점에서 사지 않을 그런 책들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신간이 많고, 가격도 종이책보다 저렴한 것이 참 신기했다.
그 중 사이트 메인에 나한테 추천해준다는 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스타트업 바이블'이라는 책이었다.
2012년까지만해도 나에겐 구글보다는 네이버가 더 편리했고, 페이스북보다는 싸이월드가 좋았고, 트위터는 어떻게 써야되는 것인지조차 모르던 때였다.
그런데 이 책이 끌렸던 이유는 난 늘 '바이블' 시리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수학의 바이블, 보카 바이블 이런류 책들을 학창시절부터 좋아했는데 나에게 '바이블'류의 책은 백과사전식으로 해당 주제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란 의미였다.
난 스타트업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이 책은 스타트업 '바이블'이니 스타트업이 뭔지 잘 설명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 자체가 그냥 잘 안 읽혔다.
비유하자면 새로운 판타지 소설을 하나 샀는데 세계관이 잘 파악이 안되어서 내용이 난해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타트업, 창업, 벤처 캐피털, 스톡옵션, 소셜 미디어, 테크크런치 뭐 하나 익숙한 단어가 없었기에 책이 읽히지를 않았다. 한편으론 해커스 홈페이지에서 어드미션 포스팅 게시판을 매일 새로고침하며 'MBA병'에 걸려있던 나에겐 '이 사람은 왜 와튼을 아깝게 그만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대표님 제가 얼마전에 구글캠퍼스에 갔다가, 스트롱벤처스 대표님께서 기술 개발하는 회사를 좀 추천 해 달라고 하시길래 페이지콜을 이야기 드렸어요. 배기홍 대표님은 TIPS 운영사인 프라이머 파트너이기도 하니 대표님이 이야기하던 TIPS도 이야기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7년 2월 어느 날, 서울산업진흥원(SBA)의 선임님께서 오랜만에 연락을 주셨다.
선임님과는 16년 하반기에 서울산업진흥원에서 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지원을 위해서 회사 소개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정작 SBA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는 인연을 맺지 못했음에도 우리 팀을 기억하고 또 다른 투자사에 소개까지 해 주시니 참 감사한 일이었다.
한편, 2016년 11월부터 운영하고 있던 서비스의 온라인 광고를 중단했다.
그래도 하루에 3만원 정도씩 꾸준하게 광고비를 지출하고 있었는데, 잔고가 너무 부족하다보니 아예 광고를 내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광고를 하지 않자 신규 회원 유입은 없고 동시에 11월 수능, 12월 기말고사로 수업 시간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어서 참으로 난감한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17년 1월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매출이 크게 반등했다.
크게 반등이라곤 하지만 사실 절대적인 액수로는 몇 백 만원 증가한 것이라 그런가보다 하였는데, 그 기세가 2월에도 이어졌고 3월에는 개학을 해서 수업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아하게도 우리도 이유를 알 수 없는 30% 성장을 했다. 지난 겨울에 했던 외주 비용이 들어왔고, 그리고 창업진흥원 창업 지원금 3,500만원도 들어왔다.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을에 느껴지던 이별의 냄새는 어느덧 봄 기운과 함께 싹 물러났다.
하루하루 서비스 운영을 하는 것도 너무 일이 많았고 고되었지만, 나에겐 중요한 미션이 아직 남아있었다. 프라이머 투자를 받는 것, 그리고 팁스에 선발이 되는 것.
바로 그 미션의 시작으로써 스트롱벤처스 대표님과 3월 어느 금요일 삼성동 구글캠퍼스에서 뵙기로 약속을 잡았다. 뵙기 전 어떤 분인지 잘 몰라서 검색을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검색을 했는데 다행히 블로그 활동을 꾸준하게 하신 분이라서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신지 글을 읽어가면서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낯설지 않은 블로그의 이름... 'The Startup Bible'.
그렇다. 내가 만나기로 한 사람은 바로 5년 전 나에게 스타트업이란 키워드를 처음 알려준, ( 왜 애써 들어간 와튼을 그만뒀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